집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분들 필독
집은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곳이라는 주장을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우리 삶의 필수재인 집을 투자처로 삼아서
집 없는 사람들의 주거안정을 볼모로 하여
돈을 벌지는 말자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듣고 보면 그럴싸합니다.
주택시장은 자가나 전세, 월세 중 하나를 골라서
누구나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 시장이니만큼
누군가가 혼자서 집을 여러 채 가지게 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집이 한 채도 없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집이 없는 분들은
집을 많이 가지신 사람들이 부르는 가격대로
전세든 월세든 올려주면서 살아야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집을 시장의 자유에 맡겨버리면
마치 가진 자는 점점 더 많이 가지게 되고
못 가진 자는 점점 잃게 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다주택자도 무주택자도 없이 누구나 1주택을 소유하게 해야 하고요,
이렇게 누구나 자기 집을 한 채씩 가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우리나라의 모든 집을 몰수한 후에
가구당 한 채씩 돌아가도록 집을 나눠줘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집으로 배정받고 싶으신가요?
너무 당연하지만 지방보다는 경기도의 집을 원하실 거고요,
경기도보다는 서울의 집을 원하실 것입니다.
서울 안에서도 강남구의 양재천과 한강 주변의 집을 원하시겠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빌라 대신 아파트를 원하실 것이고요,
그중에서도 당연하지만 구축보다는 신축에서 살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살고 싶은 곳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겠지만
원베일리처럼 보통의 사람들이 대부분 원하는 집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집이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대로라면
우리나라의 약 2200만 호 정도 되는 집들을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수인 2400만 가구에게
모두 돌아가도록 공평하게 나눠줘야 하게 될 것입니다.
주택수와 가구 수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전체 주택 2200만 호 중
서울의 주택은 약 300만 호이고
서울의 아파트는 약 180만 호인데요,
그렇다면 전체 2400만 가구 중 서울에는 누가 살도록 허락해야 하며,
단 8%에 불과한 서울의 아파트는 누구에게 허락해야 하는 걸까요?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전체 주택수에는
원베일리 같은 최상급지의 대단지 신축 아파트도 포함되겠지만,
영호남 지방의 소멸 위험지역과 같은 인프라 불모지도 포함되고요,
준공 50년이 넘어가는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흉가도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집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분들은
당신에게 배정된 집이 경북 북부의 한 인구 소멸 지역에 있어도 받아들이실 수 있으십니까?
또는 당신에게 배정된 집이 지하주차장까지 엘베도 연결 안 되어있고,
매일 녹물로 양치하고 샤워해야 하는 구축 아파트여도 납득하실 수 있나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어디서 살 것인지는
돈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은 사는 곳이긴 하지만,
사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은 최상급지의 신축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질 수도 있는 반면,
돈 없는 사람은 집을 아예 가질 수 없는 게 맞는다는 것이죠.
이는 전국의 고3 학생들이 늘 열심히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해서
그들을 모두 서울 소재의 대학으로 보내 줄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전국의 고3 학생 수는 32만 명이 넘는 반면
인 서울 대학의 정원수는 9만 명도 채 안 되니
너무나 당연하지만 성적으로 끊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집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옷 가게의 주인은 수백 명이 입을 수 있는 옷을 갖고 있고
정육점의 주인도 수백 명이 먹을 수 있는 고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돈을 많이 내는 순서대로 좋은 옷을 입을 수 있고,
마찬가지로 돈을 많이 내는 순서대로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시장의 자유야말로 자본주의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유인 것입니다.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집도 옷이나 고기, 쌀, 빵이나 마찬가지로
돈 주고 살 수 있는 물건일 뿐입니다.
다만 다른 것들보다는 덩치가 크고 비싸며,
다른 것들보다는 필요한 만큼 충분히 많이 만들어낼 수 없을 뿐입니다.
음식이나 옷은 필요한 만큼 무한정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은 무한정 늘릴 수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집이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이어야 한다는 분들은
집도 결국 옷이나 밥, 빵과 마찬가지로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일 뿐인 것임을 알아차리시길 바랍니다.
만약 모든 집이 국유화되어 자유롭게 거래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누군가는 지방 소멸 지역의 낡은 집에서 대대손손 살아야 하게 되는데요,
그 누군가가 당신의 가족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