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회장에게 대우 부도 소식이 치명적이었던 진짜 이유

부자사전/유머 이슈|2019. 12. 1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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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2월 9일 향년 8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한국 경제 성장의 황금기를 이끈 인물 중 한 명으로 세계경영의 신화로 꼽힌다. 비록 IMF를 맞아 무너지긴 했지만, 그의 창조적인 도전정신은 지금도 많은 경영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가 무너진 외환위기 이전부터 故 김우중 회장과 대우그룹은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그래서일까, IMF 외환위기 당시 대우의 부도 소식에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당시 망한 기업은 한두 곳이 아니었다. 우리가 잘 아는 기아도 당시 부도난 기업 중 하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대우그룹의 부도에 충격을 많이 받았던 걸까? 당시 사람들에게 대우그룹이 가졌던 의미를 되짚어 보자.



1999년 8월 26일, 대우그룹은 구조조정으로 회사 41개 중 16개를 매각하고 남은 25개 회사 중 12개가 워크아웃을 신청한다. 사실상의 그룹 해체 수순을 밟은 셈이었다. 한때 재계 2위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대우의 마지막은 허망했다. 대우의 몰락에는 1인 지배체제에서 오는 불안정성, 무모한 사업 확장, IMF 사태, 부실경영 등 점철된 사유들이 있었다.


1. 재계 서열 4위의 대우


세계비즈

대우는 한때 삼성과 함께 대한민국 재계 2-3위를 다투던 기업으로 ‘대한민국 4대 그룹’의 한 축을 담당했었다. 한때 대우는 현대, 삼성, LG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또한, 대우는 붕괴 직전까지 대한민국 경제를 이끈 기업이었다. 이런 대우의 몰락은 곧 대한민국 경제가 마지노선까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 대우의 부도는 험난한 여정의 예고와도 같았다.



당시 대우는 외국에서는 현재 삼성만큼의 인지도를 가진 회사였다. 현 재계 4위인 LG로 예를 들면 주요 계열사인 LG화학과 LG전자가 매각되고 LG생활건강과 LG유플러스가 워크아웃 신청을 한 셈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회사가 공중분해되어 산산이 찢겨버리는 모습을 목격했으니 너도 나도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만약 대우그룹이 외환위기 당시에 위기를 잘 이겨내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면 LG 보다 재계 서열이 더 높은 회사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전자 사업체에서는 대우가 LG에 뒤처지는 면이 있었다. 현재도 냉장고, 세탁기 등의 대우사 전자제품은 LG 제품과 자주 비교되곤 하는데 성능 면에서 LG가 더욱 우수한 것은 사실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다. 하지만 대우는 LG가 사업체를 가지지 못한 자동차 생산에도 성과를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규모적으로 더욱 큰 회사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2. 대우그룹의 다양한 사업군


khan

1999년 공식 해체된 대우그룹은 당시까지만 해도 총 고용 인원 15만 명, 계열사 41개, 국외법인 396개의 대형 기업이었다. 대우는 동남아시아, 미국 시장 등에서 성공을 거두자 1970년대 초반부터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우전자, 대우조선 등을 창설하며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그리고 1974년에 1억 불의 수출탑을 달성하며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그룹에 입성한다.




이처럼 무역과 건설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대우는 본격적으로 GM 사의 지분을 전량 인수하면서 자동차 사업에까지 뛰어들었다. 김우중 회장은 불과 3-4년 만에 전 세계에 대우자동차 판매점을 300-400개를 만들어내며 대우그룹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그렇게 사업을 확장시킨 대우는 순식간에 재계 4위의 자리에 올랐다.



대우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대우자동차, 대우중공업, 대우전자 등으로 추려볼 수 있는데 이외에도 다양한 사업 군을 가지고 있어 국민들의 생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컴퓨터, 통신기기, 자동차 부품을 생산했던 대우통신,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 중인 대우건설, 대우증권 등이 있다. 심지어 교육계에도 진출했다. 거제도의 대우 초등학교, 거제 중고등학교, 거제대학교를 대우가 운영했었다. 아주대학교 역시 육영사업의 일환으로 학교법인 대우학원에서 인수했다. 이처럼 생활 전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대우였기에 몰락의 여파가 크게 다가온 것이다.


3. 대우그룹의 엄청난 부채


아주경제

당시 대우그룹은 금융부문을 중점으로 두고 사업 확장을 하여 내부적으로 부채가 많았다. 그 부채 규모가 엄청나 국민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부채는 500억 달러로 현재 환율로 56조 1000억 원에 이르는 돈이다. 사실상 대우그룹은 회사 자본금 총액 대비 부채가 4배가 넘는 빚 덩어리 회사였다.


그뿐만 아니라 문어발식 확장으로 그룹의 덩치를 키우는데 주력했던 대우그룹은 계열사 부실을 피할 수 없었고 김우중 회장은 이를 감추기 위해 41조 원의 분식회계까지 지시했다. 부실기업임이 드러나면서 대우는 더욱 큰 타격을 입었다.


4. 아직도 잔존하는 대우의 흔적


대우의 몰락이 아직까지도 충격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잔존하는 대우의 흔적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대우’라는 브랜드 가치는 살아남아있다. 대우건설은 ‘푸르지오’ 브랜드로 국내 TOP3의 대형 건설사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대우조선해양, 미래에셋대우 등 '대우'의 이름을 내 건 수많은 회사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대우조선해양은 2018년 기준 재계 서열 23위이며 대우건설도 33위에 랭크인 되어있다. 비록 이제 찢어진 계열사들은 이름만 같은 다른 회사다. 다만 대우그룹은 사라졌음에도 대우의 흔적이 남아있어, 충격적이었던 대우의 부도는 끊임없이 회고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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